버섯을 보고 버섯처럼 쓰다: <세계 끝의 버섯> 애나 칭 2015/2023

세계 끝의 버섯: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The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On the Possibility of Life in Capitalist Ruins

애나 로웬하웁트 칭 Anna Lowenhaupt Tsing, 2015

버섯처럼

이 책은 자본주의의 경계와 폐허에서 생명을 찾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자본주의 체제는 그동안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소외(“마치 생명의 얽힘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독립할 수 있는 능력”(p.29))시키며 부를 축적하고 성장을 지속했다. 자본주의는 특정한 종류의 자원을 캐내기 위해 이곳저곳의 경관을 그 자원을 중심으로 단순화하는데, 더 이상 자원을 생산하지 못하는 장소는 유기되어 폐허가 되거나 자원과 관계없는 장소는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영원한 발전과 확실한 혜택을 약속하는 자본주의의 꿈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게 어느 정도 확실해진 현실에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러한 폐허에서 생명을 찾는 일”(p.30)이다.

그래서 애나 칭이 주목한 것은 송이버섯이다. 송이버섯은 이 책의 주제이자 방법이다. 무려 20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현재에서 각 등장인물의 과거로, 송이버섯에서 소나무와 포자로, 인류학에서 삼림학, 역사학, 생물학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그는 이 책을 “끝맺기를 거부하는”(p.503) 책이라고 부르며 짧지만 다채로운 장이 “비 온 뒤 쑥쑥 올라오는 버섯”(p.8)처럼 풍부하고, 탐험을 부르고, 각 장의 이야기가 논리적 기계가 아닌 “열린 배치(open-ended assemblages)”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서술 방식은 산만하고 때때로 반복되는 느낌을 주지만, 칭이 비판하고 넘어서고자 하는 계몽주의적 진보, 자립적/표준적 개별자를 가정하는 관점(‘이기적 유전자’, ‘호모 에코노미쿠스’)에서 포착되지 않는 존재들을 대안적인 방식으로 담아내기 위한 시도이자, 여정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칭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하고 우연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패치(patch), 얽힘, 불협화음을 기술하며 우리가 “현재의 불안정성을 지구 전체의 상태로 이해”하고 “시공간의 이질성”(p.27)을 더 많이 알아차리도록 추동하고자 한다.

(자본주의) 세계 끝의 송이버섯

왜 송이버섯일까? 칭은 “다른 생물종과 변형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p.85) 송이버섯을 플랜테이션, 자립형 근대성에 가장 배치되는 존재로 본다. 송이버섯은 숙주 나무뿌리와 상리공생 관계를 맺으며, 나무에 양분을 찾아주고 자신은 나무로부터 탄수화물을 얻는다. 이런 구조로 인해 송이버섯은 인간 지배와 자본주의적 환경에 저항하며 오염과 혼종의 관계성이 살아있는 자본주의 세계의 끝에 남았다.(p.85) 칭은 송이버섯이 있는 곳은 노동 소외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있기에 자본주의 논리가 아닌 ‘자유’를 찾는 사람들, 혹은 산업경제에서 쫓겨난 이들이 모여 이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는 점을 조명하기도 했다.

이 세계의 끝, 가장자리는 자본주의의 내부인 동시에 외부다. 칭은 그 통일성과 통치성을 토대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하트와 네그리 등을 언급하며, 그들의 비판에는 공감하지만, 경제적 다양성을 인정하길 제안한다. 칭은 경제적 다양성이 꽃피는 장소를 “주변자본주의적(pericapitalist)”(p.121)이라고 부르며 여기서 비자본주의적 가치 체계와 자본주의적 가치 체계 사이의 번역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자유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버섯 채집인들이 토착 지식을 활용해 채집한 송이버섯이 규격화된 자본주의 자산이 되고, 다시 일본에서 선물이 되는 번역 그 자체가 자본주의라는 것이다.(p.119)

아마도 칭은 자본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대항적 대안을 주장하기보다는 이미 자본주의에 녹아있는 비자본주의적 요소를 드러내고 자본주의의 통치에 포섭되지 않는 경계의 활동에 주목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넘는 실천을 가시화하고 대안을 구체화하자는 입장으로 보인다. 그의 이러한 자본주의 비판은 자칫하면 다시 자본주의의 “구제”로 인해 자본주의적 통치체제에 자원을 부여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에 식민화된 상상을 문제화하고 새로운 인식론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으로 나아가게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역사는 우연을 통해 만들어진다

칭은 송이버섯이 있는 풍경을 통해 인간 중심 서사를 넘어 비인간과 인간이 함께,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서로를 오염, 경작시키고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근대의 산림관리는 불확정성을 제거함으로써 숲의 역사성을 가리곤 하지만, 칭은 풍경은 역사적 행위의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활동적인 것이며 인간이 다른 존재에 합류하고 교란하며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p.271) 그리고 인간 중심적 역사서술을 넘어서기 위해 “유기체가 이야기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p.295) “일련의 중요한 사건이 탄생시킨 국면과 우발적인 사건에 의한 우연성의 시기에 생물종의 경계를 넘어서 이루어지는 얽힘”(p.294)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유전적으로 다양한 포자를 가진 버섯! 모자이크형 몸체! 집단과 관련된 결과를 생성하는 화학적 감지 행위! 얼마나 이상하고도 멋진 세상인가? 나는 고민한다. 패치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규모들, 과학에서도 패치들이 등장하는 다수의 리듬, 박자로 되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포자와 함께 날아다니고 범세계적인 과잉을 경험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느낌인가! 잠깐 동안 독자들은 성급한 결론들로 임시변통해야만 한다.”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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