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 ‘국익’ 대신 원칙을 논의하자

지난 글(https://dala-dala.com/archives/461)에서 한국의 ODA(공적개발원조)를 상업적·외교적 국익에 연계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 같다는 문제를 언급했다. 얼마 전엔 행정연구원에서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철학과 목적: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국익과 실현 방향”을 주제로 토론회도 열렸는데, “국익”의 의미를 지구촌 공동 번영이나 평화로까지 확장하면서도 “국익”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점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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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ODA 최상위 정책 문서인 국제개발협력 종합계획에 “국익”이 처음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21년 <제3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일 것이다. 해당 문서는 2021~2025년 한국 정부 국제개발협력의 비전을 “협력과 연대를 통한 글로벌 가치 및 상생의 국익 실현”으로 설정했다. “상생의 국익”의 내용에는 ODA 사업에 있어 민간건설사와의 협업을 확대하고 정부 대외정책과의 연계를 강화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사실 한국 정부가 다른 나라를 지원하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이익 추구는 국제개발협력을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한국 정부는 1960-70년대 UN 총회나 비동맹운동 회의 등에서 한반도 문제가 논의되자 남한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다른 남반구 국가들과 개발협력을 활용해 협상해야 했다. 또한, 군부 정권이 내세우던 경제성장 기조 아래 국제개발협력이 시장 확보의 수단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듯 국제개발협력이 북한과의 경쟁이나 ‘수출입국’의 도구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했던 시기에도 국익이라는 단어가 전면에 나서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국익이라는 표현은 국제개발협력을 인도적 가치의 실현으로 보든, 국가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보든 오히려 분석적·비판적 차원에서 쓰일법한 표현이지 정책 문서에 내세워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3차 기본계획에서는 어째서인지 이 단어가 비전에 포함되었다.

이번에 발표된 4차 종합기본계획(2026-2030)의 비전은 “혁신과 성과를 기반으로 보편적 가치와 상생을 실현하는 K-ODA”로, 국익이라는 단어는 빠졌지만, 상생이 그 자리를 채웠고, 3차 계획보다 한국 기업을 고려하는 내용이 강화되었다.

  • (경제·사회 인플 지원 확대) “민간부문의 참여 가능성이 높은 유망 인프라사업을 중심으로 대형·고부가 사업을 발굴하고 협력기반 확충 지원” (17쪽)
  • (공급망 연계 강화) “민간부문 수요를 고려하여 공급망-ODA 연계 사업을 체계화·구조화 하는 시장발굴형 사업 추진” (18쪽)
  • (개발협력 프로그램 혁신) “우리의 대외 전략 및 중점 분야, 강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기획형 방식으로 협력 사업을 발굴하여 협력국에 선제시, 협력국 수요 및 여건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의 수요조사를 통해 사업을 선제적 발굴하고 (…)” (19쪽)

한국 정부 국제개발협력의 ‘국익’에 관해선 여러가지 논의를 할 수 있겠지만, 우선 눈에 띄는 두 문제만 이야기하자면, 첫째는 ‘국익’이 말하는 이익이 사실은 기업의 이익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이러한 전략이 협력의 관점이 아니라 일방적 관점에서 쓰였다는 점이다.

누구의 이익인가? 3차와 4차 기본계획에서 국익이나 상생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내용을 보면 국익과 상생은 기업의 이익, 그리고 기업 활동을 통해 성장한 한국과 협력국의 경제 규모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대기업이나 정부의 부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낙수효과’가 일어나지 않으면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이익 추구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오늘날 극단으로 치닫는 불평등은 이러한 낙수효과가 쉽게 일어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떤 협력인가? 기본계획의 국익과 상생은 협력의 관점이 아닌 일방적 관점에서 쓰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하고 싶은 대로 사업이 형성되고 정책이 실현될 수 있다는 듯, 분야와 방식을 정한다. 하지만, 협력국 정부와 시민이 원하는 사업보다 한국 정부나 기업이 원하는 사업이 우선된다면 협력국의 자기 결정권과 주도성, 그리고 사업의 의미있는 시행과 사후 관리에 필요한 관심이 떨어져 현지 관점에서는 크게 효과가 없는 사업이 양산될 수 있다. 한편, 협력국으로서는 다른 정부 공여기구와 국제기구, 다자개발은행 등 여러 다른 파트너가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한국과 중요한 일을 도모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국익이 문제라면 대안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아주 마음에 드는 답을 찾진 못했지만, 지금은 원칙을 강조하는 게 꽤 괜찮은 대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사람들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별로 관심 두지 않는 것 같지만.. SDGs에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leave no one behind)’이라는 원칙이 있다. 발전이 단순히 경제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다른 이들보다 더 소외되고 힘들게 하는 불평등과 취약성을 줄이는 데 기여하도록 하자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지금의 논의에 (조금은 강하게) 적용해 본다면 국제개발협력이 사기업과 투자자, ‘국가’의 번영과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중소기업, 장애인, 그리고 여러 소수자의 권리와 행복을 증진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타파하는 데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실현하는 방식 중 하나는 방지턱을 놓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국익이라는 용어를 쓰건, 상생이라는 용어를 쓰건,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기업 중심의 협력 방식을 택하건 그런 기조의 사업이 너무 쉽게, 그리고 협력국 정부와 시민의 권리와 목소리를 무시한 채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방지턱을 놓는 것이다.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그리고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등에는 세이프가드가 있는데, 이는 개발사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과 사회적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대책을 수립해 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이다. 한국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기구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수출입은행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에도 세이프가드가 있지만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제도를 강화해 모든 ODA 사업이 현지의 환경과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고려하고, 현지 시민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면, 국익 중심 접근의 문제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현 정의당) 권영국 후보가 인권 공약으로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인권기반접근 원칙을 도입하고 인권영향평가를 의무화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하며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다.

  • 한국 국가 인권위원회는 최근 EDCF 세이프가드 개선을 권고했고, 대안적국제개발시민사회네트워크(KOSODA)와 기업과인권네트워크(KTNC Watch)는 이를 환영하며 개선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근원적으로는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접근을 친빈곤(pro-poor) 관점으로 전환해야한다. 친빈곤 관점은 가난한 이들의 이익과 구조적 불평등의 해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국가와 기업의 이익보다 가난한 이들의 이익을, 경제성장과 산업성장보다 불평등의 감소와 정의, 인권보장을 더 중요하게 고려한다면 지금과는 꽤 다른 방식과 사업이 주류를 이루게 될 것이다.

친빈곤 관점을 전면적으로 채택한 사례로는 캐나다 ODA가 있다. 캐나다 정부는 2008년 제정된 ODA 책무성법(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Accountability Act)을 통해 ODA가 다음 세 원칙에 부합할 때만 제공될 수 있도록 정했다.

  • 빈곤 감소에 기여한다.
  • 가난한 사람의 관점을 고려한다
  •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한다.

나아가 국제개발협력 기본법 등에서 친빈곤 관점을 더 강조하고, 빈곤 감소와 불평등 해소가 기업 진출과 같은 다른 목표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명시할 수 있다면 국제개발협력의 근본적 전환을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원칙이 확립된다면 굳이 국익이나 ‘K-ODA’ 같은 것을 길게 논의하거나 내세우지 않아도 상대방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원칙에도 부합하는 의미 있는 협력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논의의 중심이 전략과 가시적 성과 중심의 국익론에서 벗어나 사회적 가치와 연결된 원칙으로 이동하면서, 그간 소수 관료와 전문가의 손에 맡겨졌던 국제개발협력 정책이 비로소 사회적 논의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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