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협력은 운동이 될 수 있을까(1) 2026년 5월 – 한베평화재단, 사단법인 아디, 정의기억연대, 그리고 스리랑카 농민 연대

국제개발협력은 운동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을 포함한 북반구 전문가가 남반구 사회의 문제를 기술적으로 고치는 사업을 벌이는 것을 넘어, 서로 배우고 연대하며, 권력과 자본을 가진 이들의 억압에 저항하고 구조적 차별과 배제, 폭력의 근원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운동이 될 수 있을까? 국제개발협력과 글로벌 연대 운동의 경계에 있는 실천을 기록하며 그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1. 한베평화재단 – 전쟁의 기억부터 시작하는 평화운동

    베트남 전쟁에 대한 사죄와 성찰을 통해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 2016년 설립한 한베평화재단은 아카이브·학술 연구, 베트남 한국군의 전쟁범죄 진상규명, 피해 마을 공동체 지원사업, 피해 지역 청소년 장학사업, 평화교육, 평화기행, 평화연대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2025년 한베평화재단 화동보고서 “호아스 꽃이 피었습니다”: https://kovietpeace.org/notification/?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71164341&t=board)

    한베평화재단의 진상규명 활동 중에는 용산 전쟁기념관의 전시물에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도 있다. 2025년 6월 한국을 방문한 한국군 피해마을 퐁니 마을과 하미 마을에서 온 두 응우엔티탄(동명이인)님과 전쟁기념관 다크투어를 함께 한 뒤부터 시민 30여 명으로 구성된 ‘탄탄이'(두 응우엔티탄님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들은 사실과 다른 베트남전 관련 전시물의 철거와 교체를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채명신 총사령관의 훈령이 사실과 다름을 폭로하며 포스트잇 액션을 벌이기도 했다.

    출처: 2025 한베평화재단 활동보고서

    6월 11일에는 오랫동안 전쟁기념과 다크투어를 진행해 온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들과 전쟁기념관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억하도록 하고, 무엇을 알지 못하거나 잊도록 하는지, 나아가 평화로 가기 위한 전쟁의 기억은 무엇이 될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모임이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공지글: https://kovietpeace.org/notification/?idx=171285606&bmode=view)

    한베평화재단에서 올린 공지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 평화에 대한 상상과 연결되어 있다면, 지금의 전쟁기념관은 우리에게 무엇을 상상하게 할까요. 그것이 무엇이든 평화는 아니겠지요. 우리는 어떻게 전쟁기념관을 진정한 평화를 바라는 시민의 것으로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전쟁과 폭력의 기억은 평화, 나아가 국제개발협력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한국이 국제개발협력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이 받은 해외 원조가 언급되기도 하고, 전쟁과 분단의 고통을 공유하는 국가로 구 제국 공여국과 차별화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간의 기억이 한국의 피해자성에 집중했다면, 한베평화재단과 여러 평화운동이 성찰하고자 하는 기억에는 가해자로서의 한국도 있다. 한국 정부가 자랑하는 경제력과 ‘위상’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가해자성에 관한 성찰은 국제개발에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풍요로움이 어디서 오는지, 무엇을 착취하고 희생시키는지에 관한 논의에서 출발하는 국제개발협력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폭력을 성찰하는 한베평화재단의 현지 지원활동의 접근과 내용이 궁금하다. 이 부분도 다음에 살펴보아야겠다.

    2. 사단법인 아디 –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 범죄에 맞서는 팔레스타인 연대

    “공동체가 인권을 실현하는 아시아”를 지향하며 기록하고 지원하며 연결하는 활동을 하는 사단법인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ADI)는 현장 지원 사업도 하고, 때때로 국제개발기관과 협력하기도 하는 국제개발협력 단체면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정확히 말하는 몇 안 되는 단체 중 하나인 것 같다. 아디 외에도 팔레스타인 지원 활동을 하는 국제개발협력 단체가 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원인인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대해선 잘 말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가해자가 누군지 명시하지 않거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대등한 입장에서 분쟁을 겪는 것처럼 그리곤 한다. 모호한 입장이 인도적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이스라엘이 인도적지원조차도 공격하고 가로막는 상황에서 그런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지 궁금하다.

    5월에도 아디는 팔레스타인 연대를 위한 여러 활동을 했다. 5월 9일에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폭력을 다룬 다큐멘터리 <노 아더 랜드> 공동체 상영회를 했고, 가자지구로 향하는 구호 선단에 다시 오른 해초 활동가의 여권을 무효화한 정부에 항의하는 성명을 냈다. 성명에서 아디는 이스라엘의 반인륜범죄에 대해 ‘보편적 인권’을 말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들어 이렇게 썼다.

    “가자지구에는 16년간의 집단적 처벌과 4년째 이어지는 집단학살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봉쇄에 발이 묶였고, 마실 물과 음식을 빼앗겼으며, 치료를 받는 것조차 이스라엘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보편적 인권이 완전히 박탈당한 십수 년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인권 없는 인간’으로나마도 ‘존재’할 수 없고 특정 민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해야 하는 인종 청소의 위협 속에서 또 4년째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가자로 향하는 항해는 단순히 ‘위험지역’에 진입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불법 점령의 역사를 부수고, 인종 청소의 위협 속에서 평화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입니다. 즉, 이 항해 자체가 곧 ‘보편적 인권’으로 향하는 항해입니다.”
    ([성명] 김아현(해초)의 여권 효력 복구 촉구 성명: 한국 정부는 ‘보편적 인권’을 위한 항해를 가로막지 말라: https://adians.net/adi_news/?bmode=view&idx=171241126)

    아디는 2024년부터 바보의나눔 재단의 지원을 받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젊은 여성 언론인을 육성하는 사업인 “Speak-up”을 해오고 있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군의 잔혹행위 영상을 공유한 이후 Speak-up의 여성 언론인들이 뉴스타파와 협업하며 취재에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피해자의 유족, 그리고 목격자를 만나 그날의 참상이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은 건물에 화력을 퍼부었고, 그 과정에서 사망한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시신은 옥상 위에서 던져진 뒤 굴삭기 삽으로 퍼올려져 이스라엘 군과 함께 사라졌다. 유족은 아직도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뉴스타파x아디. 이재명 공유 ‘팔레스타인 영상’ 유족 찾았다… “아들 시신 돌려달라”: https://newstapa.org/article/STAML)

    아디는 이러한 활동 외에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피해주민 지원 캠페인”을 상시 진행하고 있다. 그 내용과 모금 안내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adians.net/campaign/?bmode=view&idx=169353735

      3. 정의기억연대 – 2026 광주인권상 수상자 실비아 아칸과의 인연

      우간다에서 ‘골든 우먼 비전 인 우간다’라는 단체를 만들어 우간다 북부 분쟁 생존 여성의 자립을 돕는 활동을 해온 실비아 아칸(Sylvia Acan)이 5.18기념재단의 ‘2026 광주인권상’을 수상했다. 실비아는 13살에 우간다 북부의 반군조직 신의저항군(LRA)에 납치되어 8년간 억류 끝에 풀려난 이후 인권활동가로 활동했다. 2000년부터 노르웨이 난민위원회 소속으로 실향민 캠프에서 지원활동을 했고, 2011년에는 ‘골든 우먼 비전 인 우간다’를 설립, 여성들이 수공예를 통해 자립하는 것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

      2026 광주인권상 심사위원회는 “개인의 고통을 인권운동으로 확장한 사례로, 광주의 정신이 세계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아칸의 수상 의의를 밝혔다. 아칸은 시상식에서 “개인적인 고통을 비극적인 결말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다짐과 활동으로 상을 받게 된 것 같다”며, “아이들과 여성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 분쟁 생존자의 목소리가 존중받고 지지받는 세상, 평화가 깃든 세상을 다 같이 만들어가길 소망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관련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60517044000054?input=copy)

      실비아 아칸과 한국 시민사회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골든 우먼 비전은 정의기억연대의 나비기금 지원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받았고, 실비아는 2018년 제1회 김복동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비기금은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 배상을 받으면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활동에 기부하고 싶다는 김복동과 길원옥 활동가의 뜻에 따라 정의기억연대에서 재정한 기금으로,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팔레스타인 등 여러 나라에서 성폭력 여성과 아동을 지원하는 활동에 연대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연대 활동으로는 2021년 시작된 팔레스타인 여성 트라우마 센터 지원, 베트남의 한국군 성폭력 생존자와 그 가족 지원 활동이 있다. 나비기금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omenandwar.net/butterflyfund

      2018년 김복동 평화상을 받는 실비아 아칸. 출처: 한겨레

        4. 국내 시민사회단체, 스리랑카 대통령에게 농민권리와 환경권 침해하는 스리랑카 발전사업 중단 촉구 서한 발송

        지난 5월 13일, 가톨릭기후행동과 국제기후종교시민(ICE)네트워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16개 조직이 스리랑카 Anura Kumara Dissanayake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스리랑카 함반토타(Hambantota) 지역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태양광 단지 확장 사업이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역주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코끼리 보호구역 내 벌채 활동의 중단과 포괄적인 환경영향평가(EIA) 시행, 원시림이나 생산적인 농경지 대신 황폐화된 토지와 건물 지붕을 활용한 태양광 시설 확장을 요구했다.

        서한 전문: https://ice-network.org/notice/?bmode=view&idx=171293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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